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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의 삶 실천한 김장하 선생, 장학생 문형배

by 늘솔 2025. 4.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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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탄핵 정국에서 문형배 헌법재판소 재판관과 김장하 선생과의 관계에 대해서 알려지면서 김장하 선생에 대한 이야기를 언론에서 많이 접하게 되는데요. 저는 이전부터 '어른 김장하'라는 다큐영화를 알고 있어서 훌륭한 어른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 탄핵 정국에서 이슈가 될지는 몰랐는데요. 그래서 이번에는 진정한 나눔과 헌신의 삶을 실천하신 김장하 선생에 대해 소개하고자 합니다. 또한, 그의 가르침을 이어받아 사회에 기여하고 있는 문형배 헌법재판소 재판관과의 특별한 인연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진정한 어른 <김장하 선생>

 

 

김장하 선생은 경상남도 진주에서 '남성당 한약방'을 운영하며 평생을 지역 사회와 어려운 이웃을 위해 헌신하신 분입니다. 한약방을 통해 얻은 수익을 바탕으로 1983년에는 진주에 명신고등학교를 설립하였고, 1991년에는 이 학교를 국가에 헌납하였습니다. 당시 학교법인의 자산 가치는 약 100억 원에 달했으며, 이는 교육을 통한 사회 환원을 실천한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받습니다. 선생의 이러한 그의 기부와 나눔은 철저히 익명으로 이루어졌으며, 수많은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고, 사회적 약자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쳤습니다. 

김장하 선생님은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며, 지금까지 1,000명이 넘는 학생들이 그 혜택을 받았습니다. 또한, 지역의 사회, 문화, 예술, 언론, 환경, 역사, 여성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그 예로, 1990년 시민주로 창간된 옛 '진주신문'의 주주·이사로 참여하였으며, 1995년부터 27년간 '진주가을문예'를 지원하였습니다.

 

철학과 신념 

김장하 선생님은 "똥은 쌓아두면 구린내가 나지만 흩어버리면 거름이 되어 꽃도 피우고 열매도 맺습니다. 돈도 이와 같아서 주변에 나누어야 사회에 꽃이 핍니다."라는 말씀을 통해 나눔의 철학을 전하셨습니다. 선생님은 명신고등학교 설립 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원칙을 세우셨다고 합니다. 

 

친척을 채용하지 않는다.

✅ 돈을 받고 교사를 채용하지 않는다.

✅ 권력에 굴복하지 않는다. 

 

이러한 원칙은 그의 청렴한 삶의 자세를 보여줍니다. 김 선생의 이러한 삶은 2023년 방영된 MBC 경남의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를 통해 대중에게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이 다큐멘터리는 그의 숨은 선행과 철학을 조명하며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문형배 재판관과의 특별한 인연

 

김장하 선생의 나눔은 많은 이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그중 한 명이 바로 문형배 헌법재판소 재판관입니다. 문 재판관은 경남 하동에서 태어나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자랐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김장하 선생을 만나 대학 4학년까지 장학금을 지원받았으며, 이를 통해 학업을 무사히 마치고 사법시험에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문 재판관은 사법시험 합격 후 김 선생을 찾아가 감사의 인사를 전했을 때, 김 선생은 "내게 고마워할 필요는 없다. 나는 이 사회의 것을 너에게 주었으니 갚으려거든 내가 아닌 이 사회에 갚아라"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가르침은 문 재판관의 마음에 깊이 새겨졌고, 그는 법관으로서 사회에 기여하는 삶을 살고자 노력해 왔습니다. 


2019년 헌법재판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문 재판관은 김장하 선생에 대한 감사와 존경을 표하며, 그의 가르침을 따라 법관의 길을 걸어왔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그는 평균인의 삶에서 벗어나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재산을 관리해왔으며, 헌법재판관 퇴임 후에도 영리 목적의 변호사 개업은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였습니다. 

김장하 선생의 삶은 진정한 나눔과 헌신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귀감이 됩니다. 그의 가르침을 이어받아 사회에 기여하고 있는 문형배 재판관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깊은 감동과 교훈을 줍니다. 이러한 분들의 삶을 통해 우리 사회가 더욱 따뜻하고 정의로워지길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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